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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괴담] 반역자일 뿐이야
인기 역사 서양
흑사병(페스트)의 공포
2021.04.07 09:07
관리자2(a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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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에 대해


페스트균은 현재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다. 페스트 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흑사병의 주요 형태는 가래톳 흑사병(bubonic plague), 패혈증형 흑사병(septicemic plague), 폐렴형 흑사병(pneumonic plague) 등이다. 중세에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여 인구 7500만~2억 명 남짓이 희생됐다. 국내에서는 근래에 발병이 보고된 바가 없다.


페스트의 어원은 라틴어 단어 'Pestis'. 이 단어는 원래 특정 질병이 아니라 전염병, 돌림병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다. 그런데 14세기에 유행한 전염병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만 특정 질병의 고유명사가 됐다. 또한 라틴어 문헌에서도 전염병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와 특정 질병을 가리키는 고유명사, 2가지 역할을 모두 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병의 증상을 지칭하는 명칭은 블랙 플라그(Black Plague) 혹은 흑사병(黑死病)이다. 병이 진행되면서 전신에 파종성 응고를 유발하여 광범위한 반상 출혈 및 사지와 코 등의 신체 부위에 검은색의 괴사를 일으켜, 살이 검은 빛으로 썩는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그저 오역이다. 당시 이 병을 일컫던 말은 라틴어로 'Atra Mors'였는데, 'Atra(남성형: Ater)'는 '검다'라는 뜻이 있으나 또한 '끔찍하다'라는 뜻도 있어 문맥 상으로 유추할 때 '끔찍한 죽음'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이를 당시 스칸디나비아의 기록자들이 '검은 죽음'이라 오역하고, 그것이 영어권과 독일어권에 그대로 퍼져 정착되었다고 한다.


* 역사상의 발병 사례


우리가 흔히 아는 흑사병은 14세기 중엽 유럽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던 2차 대 역병(Second Plague Pandemic)으로 2차 페스트 범 유행이라고도 불린다.


비슷한 페스트 계열의 전염병은 14세기 이외에도 전후로 2차례 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도 불리는 6세기 중엽부터 중동 및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과 1850년대에 발생한 중국 윈난성을 필두로 한 아시아와 남미 지역에서의 대 역병을 말한다. 각각 1차 대 역병, 3차 대 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 1차 대역병(유스티니아누스 역병)


발칸 반도- 흑해 연안 지역이 병의 기원으로 추측되며 또한 중앙아시아-중국에 걸쳐 있는 톈산 산맥에서 발견된 유골에도 역병의 조상격 되는 DNA가 검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해서 병이 서유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고 불리는 이 역병은 최신의 연구에 따르면 발칸반도와 흑해 주변 교역로에서 처음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염병이 처음 보고된 것은 라벤나 탈환과 같은 해 541년경 이집트에 위치한 펠루시움이란 도시였다. 이때부터 시작해 200여 년간 유행했던 범유행전염병으로,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봄에 콘스탄티노플까지 전염되었다.이는 이집트에서 출항한 곡물선에 타고 있던 쥐들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과거에는 역병이 주요 항구 등을 통해, 무역 네트워크와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졌다. 이는 로마 입장에서 특히나 치명적이었는데, 로마는 당대 그 어느 문명보다 도시화율이 높았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요 도시들도 대부분 지중해 해안을 따라 탄생한 항구 도시들이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도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큰 피해를 입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로마 제국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던 이집트가 괴멸적 타격을 입었고,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세수와 병력도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국방과 행정을 위한 자원은 계속 필요로 했으니 유스티니아누스는 무거운 세금을 계속 부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다시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역, 농업 생산, 공산품 생산, 병력동원 모두 감소했다.


당시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동로마 제국에서는 동시기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이름을 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악일 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1일에 5,000명씩 사망해서 도시 인구가 40%까지 떨어졌다. 그 근방의 사람들의 절반이 이 병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프로코피우스와 같은 당대 역사가는 하루에 수만명이 죽고 시체가 산을 쌓았다고 기록했다. 이 병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흑사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았다. 이 역병만 없었다면 동로마 제국이 다시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동로마는 고트 전쟁(서기 534~554년)으로 동고트 왕국을 없애고 이탈리아 재정복에 성공했지만, 전염병의 결과 541년 승리할 것만 같았던 이탈리아 재정복 전쟁의 전황도 불리하게 돌아갔으며, 결국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다가 서기 554년에 가서야 종결었다. 비록 유스티니아누스의 승리였지만 상처뿐인 승리였고, 로마는 다시 그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흑사병 때문에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동로마는 6세기 중반에 침입한 랑고바르드족에게 이탈리아 대부분을 잃었다.


당시 호스로 1세와 전쟁 중이었던 동로마는 라지카(조지아)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역병으로 인해 사산 제국군이 철수하자 동로마 제국군이 기회를 노려 쳐들어갔으나 이들 또한 역병으로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류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흑사병의 전조격인 질병으로, 현대 의학자들은 이 질병을 14세기의 흑사병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페스트균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질병의 유행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던 동로마 제국의 기세가 완벽히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역병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동로마 제국은 후일 사산조 페르시아를 상대로도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전쟁을 치러야만 했으며, 몇 세대 후에 이루어질 아랍 세력의 연합에 공헌을 했다고도 한다. 로마는 곧이어 새로이 부상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제국의 알짜배기 영토였던 레반트와 이집트 그리고 북아프리카를 모두 빼앗겼다. 그리고 다른 한편 상대적으로 도시화율이 낮았던 게르만 사회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세계보다 피해를 훨씬 덜 받아서 그전까지와 달리 지중해 세계 상대로 해볼 만한 역량이 되었으며, 로마의 대주교(교황)은 결국 동로마 대신 게르만족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은 부활하지 못했지만 그 잿더미 위에 게르만족과 살아남은 로마 유민(로마 가톨릭 교회)이 손을 잡아 서유럽을 탄생시켰다. 덤으로 브리튼 섬의 로만 브리튼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혀 웨일스로 밀려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타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후대 황제들의 눈물 어린 재정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마우리키우스 황제는 부족한 예산 문제 때문에 군축을 감행하고 황제 전용 예산을 깎아가면서까지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도 마우리키우스 황제 당대에 제국이 수습될 뻔했다는 점에서 당대 로마의 저력은 무시무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동로마와 흑사병은 정말로 악연인 게, 이후 14세기에도 이 흑사병이 제국을 완전히 골로 보내버렸다. 비록 이 시기에도 힘을 이전보다는 잃었을지언정 지역 강국 정도의 위치는 가까스로 유지하던 동로마 제국은 흑사병 및 거의 같은 시점에 있었던 요안니스 5세와 요안니스 6세 간의 팔레올로고스 내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유럽 땅에 상륙하는 것을 허용하여 도시 국가급으로 축소되고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 중세 흑사병


7천만이던 유럽 인구를 5천만 명대로 줄인 대유행 사태이다. 천연두와 함께 최악의 전염병으로 불렸다.


역병의 전파 경로에는 여러 추측이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설, 혹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몽골의 지배하에 있던 중앙아시아 평원 지대에서 시작되어 동유럽의 해상 교역로를 따라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전염 루트는 다음과 같다.


** 몽골의 크림 반도 침공과 생물전

흑사병의 원인인 페스트균은 중앙아시아의 스텝 기후 지대에 서식하는 쥐 등의 설치류에 기생하던 쥐벼룩을 중간 숙주로 하는 박테리아로, 몽골 제국의 킵차크 칸국 유목민들이 쥐와 접촉하면서 그 감염이 시작되었다. 1347년에 킵차크 칸국의 군대가 크림 반도에 있는 제노바의 식민도시 카파(페오도시아)를 침공하였는데, 제노바 시민과 몽골군 사이에서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몽골군 부대는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성 안으로 쏘아 보내는 일종의 생물학전을 시도하였다. 중세 공성전 전술 가운데는 죽은 적군 시체나 동물 시체를 성 안으로 날려 보내는 전술이 존재했다. 비슷한 전법을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블라드 가시공도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전투의 결과, 카파 시내에서 대역병의 시작을 알리는 감염이 발생하였다.


** 죽음의 배(Death ships) 사건

1347년 10월 경, 흑해에서 출발한 12척의 제노바 적(籍) 상선이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선단의 선원들은 대부분 사망한 상태였으며, 생존자 역시 전신을 광범위하게 뒤덮은 고름과 검은 부종을 보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곧 주민들은 선원들이 끔찍한 괴질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칠리아 당국은 해당 선단을 즉시 항구에서 떠나도록 명령했으나, 그들이 떠난 직후 항구 주민들 역시 선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 죽어나갔다. 괴질은 삽시간에 시칠리아 전체로까지 퍼졌으며, 주민들이 이탈리아 각지로 이동하면서 제노바, 피사, 그리고 베네치아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다.

유럽 대륙으로의 전파


1347년 연말에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흑사병 감염이 보고되었다. 마르세유에서는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인 1348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 왕국에까지 퍼져나갔다. 1349년에는 영국의 웨이머스(Weymouth) 항에 흑사병이 도착하여, 수개월 뒤 런던을 거쳐 스코틀랜드까지 전파되었다. 1350년에는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 감염자가 발생했다. 감염은 인구가 밀집해 있던 대도시에서 특히 심했으며, 상대적으로 낙후하여 산촌 형태의 도시 구조가 유지되었던 곳에서는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유동 인구가 적었던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일대의 마을들, 또 최초 감염지에서 먼 내륙에 위치해 인구 유입을 차단할 시간이 있었던 벨기에나 폴란드 일부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유행은 1351년 이미 수천만 명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 유럽의 피해


행운은 우리에게 거의 미소짓지 않고, 다가오더라도 꽃이 지듯 재빨리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져 자신이 불멸이라 착각하는 것을 방지하고 스스로 자제하며 살게 하려는 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 1348년, 그리스의 한 작가


오 복받은 후손들아, 너희는 이 끔찍한 비통을 겪지 않고 다만 우리가 남긴 증언들을 우화로 읽겠지.

○ 페트라르카, 그의 남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흑사병으로 유럽은 수년에 걸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 떄문에 인구 7500만-2억 명, 당시의 유럽 인구의 최소 30%에서 50%, 지역에 따라서는 70% 이상이 몰살했다. 흔히 유럽인구의 1/3 정도가 죽었다고 언급하다. 사실 아시아에서도 맹위를 떨쳤지만 유럽에선 위기 때마다 터져 나오는 종말론 등으로 '인류 멸망 카운트다운' 정도로 여겨졌다. 거기에 중세 말기에 크게 성장한 도시들은 전염의 폭증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허나 유럽 사회가 비과학적인 방식으로만 흑사병을 다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유럽에서도 많은 의사들이 나름대로 환자를 격리시키고 환자가 사용한 물건을 태우는 등 방역조치를 취했고, 시체 운반인처럼 환자와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안면까지 완전히 덮는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역병 의사 참고.


몇몇 자치도시들은 이러한 방역 조치로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특히 밀라노가 성공적이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병자들을 격리하여 인구 15% 이하만이 사망했다. 이 외에 베네치아나 제노바 등의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질병 발생구역을 격리하고 외부 선박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그렇다 해도 인구가 밀집된 데다가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대부분 시민의 반 내외가 사망했다. 혹은 베네치아의 외딴 섬에 강제로 격리되어 버려지기도 했다. 이 외에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 등의 험준한 산간지방들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아이슬란드같이 인구가 적었던 곳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폴란드 왕국은 이례적으로 국가 전체가 전염병을 크게 피해갔는데, 이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다. 첫째는 앞선 지역처럼 인구도 적고 띄엄띄엄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시 국왕이 전염병의 정보를 듣자 빠르게 각 성에 봉쇄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당시 폴란드와 보헤미아 지역은 쥐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고양이를 잡아죽이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 의학수준이란 건 결국 거기서 거기였다. 대다수 치료법은 나쁜 피를 뽑아 체내의 균형을 맞춘다는 사혈요법이었고,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과학적 연구 역시 없었다. 일례로 1348년 10월 파리대학 의학부는 1345년 3월 20일에 화성, 목성, 토성이 일렬로 늘어선 것이 관측되었는데 이 떄문에 지구 대기에 치명적인 오염이 발생했고, 이것이 흑사병이 원인이라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당시의 의학수준은 현저히 낮았다.


애초에 치료도 불가능했을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채찍질 고행단 같은 행위에 합류했기 때문에 전 유럽의 인구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코니 윌리스의 소설 둠즈데이 북에 흑사병으로 한 마을이 전멸하는 과정이 생생히 그려졌다.


사망률이 극히 높았던 이유로 당시 유럽의 인구 과잉 또한 꼽힌다. 1150~1300년 사이 유럽 인구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경작지와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인구가 더 빨리 증가했다. 부족한 경작지는 과도하게 분할됐으며, 일부 지역에선 자율적이었던 삼포제가 강제로 시행되거나 공동지 및 임야의 이용권이 제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인구밀집 지역에선 경지 부족으로 생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 불황 속에서 격심한 기근을 겪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식단에서 전분의 비중이 높아지고 단백질 및 비타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유럽인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됐다. 영양실조는 면역력 저하로, 높은 사망률로 이어졌다. 유럽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사망률이 극심하게 차이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이유를 경제 사정과 식단의 차이에서 찾기도 한다.


중세 흑사병 창궐 원인으로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로 여겨 씨가 마르도록 잡아댄 덕분에 고양이의 개체가 급격히 줄고, 상대적으로 쥐가 대량으로 번식해 대대적으로 병이 번졌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졌다. 고양이와 개를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오류(?)를 터트려서 쥐의 천적이 사라져 결국 쥐가 더 번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주장인데 중세의 광신과 무식함이라는 편견과 연결 짓는 경향이 있다.


우선, 중세 흑사병이 최초로 창궐하게 된 설 중 하나로 쥐벼룩 등 설치류 동물들과의 접촉을 꼽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초 접촉이며 흑사병은 엄연히 사람과 사람 간에도 전파가 되는 질병이다. 다시 말해 설령 중세 유럽에 쥐가 하나도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사람끼리 옮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유기동물은 방치하면 공중위생의 심각한 위협이 되어, 흑사병 창궐의 원인이 될 확률이 높다. 동물 그 자체는 매개체가 되지 않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사체를 파먹거나 분변 등 오염물과 접촉한 뒤 그걸 그대로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 유해동물은 근대 의학이 들어선 후에도 구제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부당한 폄하이다.


전문가들 또한 이 의견을 원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세 흑사병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옮겨가는 전염에서 질병 매개체와 접촉하지 않도록 차단하고 환자를 격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고양이, 개 구제령을 내리지 않았던 동아시아, 무함마드가 아낀 동물이라고 고양이를 즐겨 기르던 이슬람권도 큰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 때문에 인구가 너무 줄어들어서, 유행이 잦아든 후 유럽에는 다중 유산 상속을 받아 부유한 사람이 늘어나고, 인구가 크게 줄어든 탓에 노동자의 임금이 많이 상승하는 등 경제적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일꾼들이 식사 제공에 많은 돈을 요구했으며, 이를 제재하기 위해 왕이 제한 선을 그었으나 그러한 것들의 필요 없이 일꾼들이 많은 임금을 받았다.


이렇게 노동인구가 크게 줄어들자 중세 농노제와 장원제가 붕괴되었다. 르네상스와 거의 같은 시대지만, 흑사병 창궐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르네상스의 시작보다 약간 빠르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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