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이자
"죽은 사자보다 산 당나귀가 낫다" 라는 말을 남긴
Sir. 어니스트 섀클턴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한 직후
질 수 없다며 "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 를 이끌고
27+1명의 선원을 데리고 남극으로 출발했다.

탐험가들을 모집할 당시 낸 신문광고는 지금도 가장 역사적인 광고 중 하나로 뽑히는데
[구인]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과 몇달간의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히 귀한할 수 없음,
성공 시 명예와 영광.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이 5천명이 넘게 지원했으니 경쟁률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남극으로 출발한 인듀런스호는 남반구 기준으로 여름인 1월이었음에도
(남극임을 가정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강추위에 얼음 속에 갖혔고

결국 얼음의 공격 앞에 배가 파손되며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남극에 표류하게 된다.

탐험대는 남극탐험을 위해 데려온 썰매개들을 먹기 시작했고, 썰매개들을 다 먹어버리자, 펭귄, 물개를 먹으며 버티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지만, 배는 극한의 추위와 날씨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다.


섀클턴은 이 작은 조각배를 타고 사람이 있는 섬에서 구조대를 불러오겠다고 선언했다.
(참고로 이 작은 배의 생김새는 아래그림을 참고하길 바란다. - 돌을 많이 싫은 이유가 험한 풍랑을 견디기 위함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구조대가 있는 곳은
바다 건너 1200km, 게다가 남극의 파도는 20m 급의 초강력 파도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던 섀클턴과 그를 따르는 무모한 선원들은 1200km 를 건넜다.

(참고로 1200Km는 서울에서 제주를 경유해 나하시(오키나와 도시)까지의 거리다.)


(악명높은 남극의 파도)

(1200km 떨어져있던 사우스조지아 섬의 험난한 산맥)
파도를 헤치고 구조대가 있는 섬에 기적적으로 도착했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험난한 산맥을 계속 넘고 넘어 결국, 거짓말 같게도 섀클턴의 탐험대는 구조대를 불러오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단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1915년 침몰한 인듀런스호가
남극 해저 3000m 지점에서 매우 뛰어난 보존상태로 발견되었다.
목선임에도 불구하고 남극해의 차가운 바다 속에 미생물이 자라기 힘든 여건에서
부패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발견된 인듀런스호는 남극조약에 따라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 역사적인 기념물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