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도쿄도 피아노 조율사 일가에서 태어난 풍선 아저씨 스즈키는 쿠니타치 음악 대학 부속 고교를 졸업하고 야마하의 계약 사원으로 코가네이시에서 피아노 조율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984년 44세 음악 교재 판매 회사 뮤직 앙상블을 개업했지만 실패를 맛보았고 여러 음악 사업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잘되지 못했습니다.
1989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3천만엔 에 가까운 참가비를 내고 판타지호를 출품하게 되는데 전시 위치도 좋지 않았고 박람회를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보러 온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박람회 마스코트 "부루야쨩">
이대로 망하겠다는 생각에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인 '부루아쨩(ブルアちゃん) 인형옷을 입고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가서 단체 버스 주차장을 개방하라고 항의를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가 개업한 뮤직 앙상블은 1990년 뮤직 5억엔 가량의 채무를 앉고 도산합니다. (어휴 지금 시세면 돈이 얼마야.ㄷㄷ)
암튼 이미 망한 마당에 프랑스 영화 빨간 풍선을 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위해 풍선을 타고 미국으로 가서 빚을 갚겠다는 황당한 생각 까지 하게 됩니다. 드디어 제 정신이 아닌듯..

1992년 4월 17일,풍선 아저씨 스즈키는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쿄 오타 구 타마가와 강에서 치바현 쿠쥬쿠리 해안을 향해 의자에 5미터 크기의 풍선과 2.5미터 크기의 풍선을 각각 2개씩 동여매고 오후 12시 45분경 날아올랐습니다 . 누구나 어릴때 한번쯤 생각하고 상상했던 걸 풍선 아저씨가 실현했네요.
이 때 15kg의 모래 주머니 2개가 떨어져나가며 고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고도가 올라가자 풍선 한 개를 끊고 민가에 떨어져 지붕위에 불시착 해서 지붕 부수고 집 TV안테나 부셨으니 별 마디 사과도 없이 성공이다 하면서 좋아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때 5,600m 고도 까지 올라갔답니다.
날아간 이 영상은 생중계로 되었다고 하네요
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 스즈키의 지인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과 지지자들의 모인 가운데 스즈키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시작했어요.
16시 20분, "스즈키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뒤 로프를 풀고 미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꺽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 해서 가족들을 안심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까지 멀쩡했었네요.
그러나 ..
2일 뒤 스즈키로부터 SOS 신호가 발신되었고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습니다. 판타지 호는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m 해상에서 발견되었고, 비행기를 본 스즈키는 비행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중지했습니다.
당시 판타지 호의 고도는 평균 2,500m로 높을 때는 4,000m 상공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3시간후 구름속으로 사라지고 아직 까지 미제 사건 으로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
그 후, 민법상 실종된지 7년만에 1999년 사망 처리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까지 어디에 있는지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남겨진 그의 아내이자, 회사 공동 경영자 였던 이시즈카 유키코(石塚由紀子)는 남긴 빚을 갚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2000년에 남편을 회상하면서 '풍선 아저씨의 조율(風船おじさんの調律)'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빚은 다 갚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016년 포르투갈인 남성과 재혼한 직후인 2017년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