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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전 베트남 왕자의 전설, 한국의 역사가 되다.-이용상(리롱뜨엉)
2021.03.27 20:29
관리자2(a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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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龍祥(Lý Long Tường / 리롱뜨엉)


이조(李朝) 대월(大越)의 왕족. 고려의 화산군(花山君). 화산 이씨의 시조. 베트남어로는 '리롱뜨엉'.


2. 생애

2.1. 망국의 왕족

1174년, 대월의 수도 승룡(昇龍)(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이(리)조 대월의 제6대 황제 영종(英宗)의 7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황후 여씨(여미아, 皇后 黎美娥)이다.


형 고종이 죽고, 조카인 혜종이 즉위하였다. 혜종이 무능하고,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1213년에 평해공 이군필, 진일조(陳日照)와 함께 삼공(三公)이 되어서 조카 혜종에게 국정을 위임받았지만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혜종의 외척 전전지휘사 진수도(陳守度)가 등장하여 혜종의 신임을 얻고는 혜종은 이용상을 비롯한 삼공을 대신하여 진수도에게 국정을 맏게 하였다. 그렇게 진수도는 권력을 얻게 되자, 전횡을 부리기 시작한다. 진수도가 혜종을 협박하여 혜종의 딸인 소성공주에게 양위시킨 다음에, 조카인 진태종과 결혼시켜 여제가 남편에게 선양하는 방식으로 진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이조 대월이 멸망하고 진(쩐)조 대월이 건국되었다.


진수도는 통국태사(統國太師)가 되어서 전권을 장악하여 자신의 정적은 물론 이용상을 비롯한 리 왕조의 모든 왕족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는데, 리 왕조의 왕족들은 진수도에게 죽임을 당하나 이용상은 진수도의 계략을 간파하였고, 이용상이 진수도의 계락을 간파하는 과정을 담은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나는 혜종의 장례식에 종친들과 왕족들이 다 모였을 때, 진수도가 황족의 피붙이들을 도륙했다. 이 위기를 예견한 이용상은 병을 핑계 삼아 나오지 않다가 배를 타고 최측근과 함께 도피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진씨 일족 측에서 이용상을 회유하려 했으나 그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그를 제거하려 했고 이를 눈치챈 이용상이 난을 피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1226년, 이렇게해서 이용상은 진수도에게 이조 왕족이 차례로 숙청당하는 가운데 자신의 일족과 부하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갔다. 이렇게 베트남 사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이씨 왕족들은 대부분 멸족을 당했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면서 왕씨를 죽일 때 왕씨의 후손이 성을 바꿔서 목숨을 보전했듯이, 이조 대월의 시대에서 진조 대월의 시대로 넘어갈때에 이씨 왕조의 후손들은 응우옌으로 성을 바꾼 채 목숨을 보전했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오늘날 베트남에 남아있는 이조의 계보는 진조가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 이용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베트남 학계는 진조가 이조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이용상 뿐만 아니라 황제와 직계 황손이 아닌 많은 방계 황손들을 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권신 진수도는 끝내 이조를 멸망시키고, 진조를 건국하였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진조는 후에 권신 호계리(胡季犛)에 의해 이조가 멸망한 과정을 똑같이 밟게 된다.

2.2. 고려로 망명

이용상은 고려측의 기록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용상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화산 이씨의 족보인 화산이씨세보에 의존하고 있다. 이후 서술되는 이야기는 화산이씨의 족보 화산이씨세보에 있는 일화이다.


바다로 도망친 이용상의 일족과 부하들이 배를 타고 계속 간 끝에 도착한 곳은 고려 영토인 황해도 화산(花山)이었다. 이용상이 화산에 도착했을 때 마침 도적들이 백성을 잡아가는 걸 보고서 도적떼를 퇴치하고 사람들을 구해주었고, 옹진현령은 이 사실을 조정에 상주했다.


안남국(베트남의 별명)의 왕자가 표류했다는 것을 보고 받은 조정에서는 크게 환영하며, 이용상이 고려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고종은 이용상의 처지를 가련히 여기고 극진히 대우했다. 고종은 이용상이 "망국의 왕자를 이리도 과하게 대우하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마워하자, "망국이라는 건 어느 나라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언제 망국의 왕이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라 대답했다고. 그리고 이용상에게 식읍을 하사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그런데 이용상의 행적을 기록한 다른 사적인 '수항문기적비(受降門紀蹟碑)'에서는 이용상이 몽골군을 격퇴한 뒤에 그 상으로서 식읍을 하사받았다고 전하고 있어 기록 상의 차이가 보인다. 위의 ‘도적떼’가 몽골군이라면 얼추 맞아들어간다.


화산 이씨 족보에 적힌 바로는 이용상이 고려에 들어올 쯤에, 고종이 어느날 내전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큰 새 한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와 사해 바닷가로 날개를 치고 앉았다고. 꿈에서 깨어 사람을 시켜 찾아보았더니, 안남국 왕자 이용상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 뒤에 고려는 원나라의 침략을 받았고, 고종은 47년의 재위기간 중 30년 가까이를 원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다가 결국 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피난지 강화도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2.3. 몽골군과의 전투

전반적인 내용은 옹진군 화산동리에 있는 수항문기적비에 적힌 내용을 기반한 화산이씨 족보에서 가져왔다. 고려 측에 기록에는 이용상과 몽골군과의 전투에 대한 기록이 없다.


1253년 12월, 이용상은 옹진성 동쪽 화산에 살고 있었는데, 고을 수령이 그에게 달려와서 몽골군이 쳐들어왔다고 위급을 호소하며 이를 물리칠 계책과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이용상은 수락하여 위효관이라는 사람과 함께 부대를 나누어 성을 지키는 수성전략을 세웠다. 삼면에 토성으로 성벽을 쌓고 전면에 목책을 높이 세웠다. 현재 옹진에 있는 화산성이 그것이다. 이용상은 동굴을 파서 땔감과 나무를 비축하고 몽골군이 대포를 쏘면 함께 쏘고, 성벽을 넘으면 돌과 뜨거운 물을 부어서 철저히 방비하였다. 몽골군이 5달 이상 공격했지만 함락되지 않았다.


전투가 오래 계속되자, 몽골 장수는 꾀를 내서 항복하는 체하고 화친을 요구한다며 황금을 가득 담은 상자 5개를 선물로 보내왔다. 이용상과 마을의 수령은 망대를 높이 쌓아 위엄을 보인 가운데 항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몽골군이 상자를 보내오자, 이용상은 이에 의심을 하여 상자를 묶고, 구멍을 뚫게 명령을 내린다. 구멍을 뚫어보니 한 사람의 자객이 있었다. 이용상은 그 구멍에 펄펄 끓는 물을 붓도록 명하였다. 자객이 죽고, 그 상자를 금종이로 바르고 적진에 도로 던져주라고 하였다. 몽골군 장수는 상자를 도로 받은 후에 깜짝 놀라고 군사를 급히 돌렸다. 그러나 이용상의 지시로 매복한 고려군 병사들이 기습하여 몽골군을 격파하고, 수백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존재한다. 당시 동위(東魏)는 서위(西魏)와 맞서 중국 대륙을 통일할 야욕을 갖고, 40만을 이끌고 서위의 요충지를 공격하여 서위의 기세를 끊으려 했는데, 군사 기지이자 교통의 요충인 옥벽(玉壁)을 지키는 수문장이었던 서위의 장수 위효관(韋孝寬)에 의해 좌절된다. 위효관의 방어전술과 이용상의 방어전술에 비슷한 점이 많고, 동위의 항복계략과 몽골의 항복계략이 서로 일치한다. 이로 보아 위효관이라는 인물의 일화를 차용해서 이용상 왕자의 후손들과 추종자들이 업적을 미화했을 수도 있다.


조선의 의병장군으로 활약한 곽재우도 비슷한 일화를 남겼으니 어쩌면 이용상과 곽재우 두 사람 역시 공성전의 귀재로 꼽힌 위효관의 묘책을 당시에 실제로 활용 및 응용하여 전투에 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는 결과물로도 볼 수가 있다. 또한 당시의 논공행상 관련 기사가 남아 있으므로 결론적으로 보면 이용상의 지략과 용맹은 위효관에 빗댈 수 있음을 알 수있고, 수항문기적비의 존재로 보아 실제 이용상의 공적 역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베트남판 환빠들은 몽골의 침략을 고려가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용상의 공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베트남의 역사 인식이 과거 환빠가 판치던 한국의 수준으로 국수주의적인 편인데, 이런 주장을 믿고서는 여러 곳에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물론 이것 하나로 잘못된 고정관념은 갖지 말아야 한다


고종은 보고를 받고 이용상을 포상하여 관직을 높이고 옹진 화산 지방 30리 인근과 식읍 2천호를 하사받았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도록 제수를 많이 내리고 화산관의 문미에 수항문(受降門)이란 글자를 써서 내렸다.

2.4.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

1253년, 이용상은 몽골 침략 당시 화산에서 몽골군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워 화산군(花山君)의 작위를 받았다.


더불어 영지도 하사받아 살아가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늘상 저 멀리 있는 조국을 그리워해서인지 조국 방향으로 해마다 제사를 지내 망향의 아픔을 달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와 후손들의 흔적이 여전히 북녘 옹진군에 남아 있다. 왕자가 고향을 보며 그리워하던 망국단(望國壇)과 적과 싸우기 위해 화산에 쌓은 성인 화산성, 조정이 이용상에게 수여한 수항문(受降門)과 그의 망명 및 귀화 사실을 기록한 수항문기적비가 있다. 다만 수항문기적비는 1903년에 세워진 것으로 수백년은 지나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를 삼아 본관은 화산으로 삼았다. 그의 맏아들 이간(李幹)은 삼중대광, 도첨의 좌정승과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고, 둘째 아들 이일청(李一淸)은 안동부사를 지내고 안동 내성면 토곡리에 정착했다.


현재 화산 이씨는 옹진을 포함한 황해도 남부에 밀집되어 있고, 경상북도 안동시와 경상남도 밀양시, 진주시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혹시라도 주변에 화산 이씨 친구가 있다면 30대손 이후의 친구일 것이다. 화산 이씨는 리 왕조를 건국한 이공온을 1대조로, 중시조를 이용상으로 본다.

2.5. 한편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에서는 19세기까지 요상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조선에 표류한 베트남 황태자 일행을 조선인들이 약탈하고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17세기에 태풍 때문에 표류하다가 베트남까지 떠내려와버린 제주도 어민들을 본 베트남 지방 관리가 저 전설을 언급하면서 내가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제주도 어민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물론 베트남 정부의 호의와 노력으로 어민들은 별탈 없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게 조선과 베트남은 중국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교류하던 사이였고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이 전설의 근원이 이용상으로 여겨지는데 바다로 도망친 이용상에 대한 이야기가 베트남에서는 이런 식으로 와전된 듯하다. 어쩌면 진조가 이조 부흥 운동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첩보를 통해 이용상이 고려에 망명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조 부흥 세력이 이용상과 접촉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용상이 고려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조작된 전설을 퍼트렸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2.5.1. 북베트남

그런데, 1959년에 이 전설을 확인하려고 북한을 방문한 (북)베트남의 역사학자가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의 문화사절로서 북한을 방문한 역사학자 쩐반잡이 북한 학자의 도움을 받아 황해도 옹진의 망국단과 수항문기적비 등을 답사하여 이용상의 전설을 확인한 뒤에 보고서를 남기면서, 서문에 이용상은 (북)베트남과 북한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고 기록하였다.

2.5.2. 남베트남

베트남 전쟁으로 북베트남에서 더 이상 이용상에 대해서 연구하지 못 하던 1967년에, 남한에 사는 화산 이씨의 25대 후손인 이훈이 (남)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하여 자신이 베트남의 왕자 이용상의 후손임을 밝혔다. 그 뒤 이훈은 (남)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자신의 뿌리찾기 활동을 하였고, 이훈의 활동은 '1226년 리 왕조가 멸망한 뒤 741년 만의 귀향' 이라는 제목으로 (남)베트남과 한국의 언론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당시 (남)베트남의 대통령까지도 관심을 보였지만,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고 이훈이 1976년에 화병으로 사망하면서 화산 이씨의 뿌리찾기는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으나...

2.6. 금의환향

KBS일요스페셜에서 화산 이씨의 귀향을 다뤘다.


1990년, 한국이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이훈의 조카인 화산 이씨 26대 이창근씨가 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대사가 직접 대사관 문 밖에 나와 이창근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1995년 3월, 이창근을 비롯한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들이 선조들의 고향 베트남을 찾게 된다. 이 때 도므어이 공산당 총비서를 비롯한 베트남 정부의 3부요인이 모두 나와 한국에서 찾아온 화산 이씨 종친들을 맞아 깍듯이 왕손으로 예우했다.


화산 이씨 후손들이 이토록 열렬한 환영을 받은 이유는, 외세의 침입을 물리치고 독립국가를 세워 베트남의 정통성을 확립한 이태조와 이가에 대한 향수가 지금도 강하기 때문이었다. 진가에 의해 이가의 후손들이 멸족된 이후 베트남에서는 현재까지도 이가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화산 이씨가 베트남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가의 후손이 없었기 때문에 하노이 시장이 제주를 대행해 왔다. 이런한 때 화산 이씨 종친의 방문은, 이가의 혈통이 800년 세월을 뛰어넘어 3,600여 km나 떨어진 한국에 온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시 현지 언론이 800년 만에 끊겼던 이가의 혈통이 부활했다고 대서특필할 정도였다. 지금도 해마다 이가 건국 기념식에 종친회 대표들이 초청된다.

2.7. 전설이 실현되다

하노이 북부 박닌성 딘방에는 1천 동 주화에 새겨질 정도로 베트남 국민이 신성하게 여기는 이조의 종묘가 있어, 이조의 역대 임금 8명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1019년에 세워진 이래 1952년 프랑스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89년에 재건되었다.


1952년, 훼손 당시 종묘에 있던 제기들 중 신성한 향로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1995년에 베트남을 찾은 화산 이씨 26세손인 종손 이창근이 여기서 첫 제사를 지낸 뒤 종묘의 땅속에 묻혀 있던 우물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그 향로가 발견되었다. 촌로들은 "나무 숲이 사라지고 따오케 강물이 마를 때, 이조가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실현되었다"며 감격했다고 한다. 그때 그 지방의 나무 숲은 사라져 있었고, 따오케 강이 흐르던 곳은 농토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MBC 방영자료에서 현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이 전설은 이조를 멸망시킨 진조의 시조가 한 얘기라고 한다. 즉 이조가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의 호언장담이 현실로 되어 버렸다는 의미. 어째 맥베스스럽다


현재는 그 우물이 복원되어 거기서 길어낸 물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방문 당시 화산 이씨의 종손이었던 이창근 씨가 베트남에 귀화해 이조의 후예로서 선조의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화산 이씨 후손들은 아예 베트남인으로 인정받아, 이들이 베트남에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베트남에서 까다로운 외국인의 건물 및 토지 구입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우대를 해주고 있다. 베트남에서 이조의 국왕 이태조가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처럼 여겨지며 존경을 받고있고,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베트남 역사에서 그나마 이조가 점했던 시기가 편하고 안정된 편이었기에 전성기로 여겨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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