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일본 후쿠오카대학의 (반더포겔-Wandervogel, 자연을 벗삼아 돌아다니기) 동아리 학생 5명이 등산을 계획합니다. 7월 12일이 되자 그들은 계획대로 하카타역을 출발하여 훗카이도 히다카 산에 도착해요. 아래 사진은 그들이 히카타 역(오전 9시)에서 출발 직전 찍은 사진이에요. 다들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분 좋아보여요.

<1970-07-12 하카타역에서 찍은 사진>
하지만 이 5명은 불곰의 습격을 받아 3명이 끔찍하게 죽게되고 2명만 살아남습니다. 가까스로 구조된 이 둘의 모습에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나 알 수 있죠. 어떻게 이들이 불곰을 만나 어떤 일이 생겼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조당시 생존한 대학생 2명 모습>
그들은 7월 12일 부터 7월 25일까지 약 2주동안 히카다 산맥 종주를 순조롭게 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히카다 산맥의 최정상을 밟을 수 있겠단 생각에 그들은 즐겁기만 했어요.

<산악 등정을 했던 대학생 5명>
그러다 7월 25일 오후 4시, 그들은 처음 불곰을 만났습니다. 불과 6~7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에서 봤습니다. 그 불곰은 크기도 작았고 대학생들은 불곰의 포악함을 잘 몰랐기에 멀뚱멀뚱 보기만 했습니다. 불곰을 만난 순간 등산을 포기하고 급히 내려왔어야 했는데 이들은 여유를 부리며 심지어 사진을 찍기까지 했어요.

<당시 대학생을 죽인 불곰을 박제시킨 모습, 자세히 보면 좌측 성인보다 작다>
이들의 대범함은 계속 됐습니다. 텐트 근처에 있던 식량을 곰이 먹으려하자 대학생 5명이 불을 피우고 소리를 질러 쫒아낸 것이죠. 불곰들은 자기가 탐하려는 것,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뺏으려 하거나 간섭을 하면 적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불곰이 도망간게 아니라 이 5명을 죽이기 위해 주변에 숨은 것이라고 하네요.
그날 밤 9시, 불곰은 그들이 머무는 텐트에 자신의 흔적을 새깁니다. 불곰이 적의를 드러낸 듯 한데, 이들은 등산을 포기할 생각은 안하고 2명씩 번갈아가며 텐트에 불곰이 나타나진 않는지 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히타카 산맥의 최정상에 오르고자하는 의지가 너무 강했고, 설마 5명이 작은 불곰 하나 제압하지 못하겠냐는 자만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자만이 후회로 바뀌기까지 시간은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인 7월 26일 새벽 4시, 곰은 텐트를 깔아뭉갰고 전날 탐하려했던 식량을 뒤졌습니다. 대학생들은 그틈을 타서 짐이고 뭐고 다 뿌리치고 도망갔습니다.

5명중 리더(타케스에)는 서브리더(타키), 카와하라에게 구조요청하라 지시했고 이 둘은 구조요청하러 가던 도중 "훗카이대학"동아리 일행을 만납니다. 타키와 카와하라는 이들에게 자신의 처한상황을 얘기하며 구조요청을 대신해달라 부탁한 뒤 남은 3명을 구하러 다시 돌아가요.
타키와 카와하라는 7월 26일 오후 1시 합류해 불곰으로부터 안전하다 판단되는 곳에 다시 텐트를 쳤지만 오후 4시에 불곰이 다시 찾아옵니다. 죽음의 위협까지 느낀 그들은 몸을 피해 깜깜해진 산길을 걷기 시작해요.

26일 오후6시, 니시이가 이상한 낌새에 뒤돌아보니 바로앞에 곰이 있는 걸 발견! 이에 5명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칩니다. 이때 불곰은 카와하라를 먼저 헤치려 쫒아가요.

깜깜한 숲길 저편에서 카와하라는 "젠장"이란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고 카와하라가 불곰과 사투를 벌이다 다리를 끌며 도망치는 것을 봤지만 그 이후로 아무도 카와하라의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나머지 4명중 타케스에(리더), 타키(서브리더), 니시이 3명만 모였고 나머지 1명 코오로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3명은 공포에 질려 근처 암벽에 올라 밤을 지샜습니다.

27일 새벽이 되자, 3명은 하산을 감행하지만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2~3미터 채 안되는 곳에 곰을 발견하고는 다시 흩어져 도망쳤어요. 이 때 제일 먼저 곰을 발견했던 타케스에가 불곰의 표적이 돼 희생됩니다. 나머지 2명 니시이와 타키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죠.

<코오로기가 기록한 그의 마지막 행적들>
한편 그 시각 코오로기는 혼자 일행으로부터 떨어진 것을 알고 텐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게되는데 7월 27일 오전 8시 쯤 곰에게 발각돼 사살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지막 판독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걸로 보아, 공포에 질려 손이 떨릴 정도로 곰이 근처에 왔으며 이 기록을 마칠 때 쯤 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
27일 (4:00) 오전 4시
눈을 떴다.
밖의 상황이 신경쓰이지만 무서워서 8시까지 텐트 안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텐트 안을 둘러보니 캼판(코펠)이 있어 안을 들여다 보자 밥이 있었다.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산 위쪽은 안개가 깔려있어 기분이 조금 나쁘다.
이제 5시 20분이다.
아직 곰이 나올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다시 침낭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아, 빨리 하카타에 돌아가고 싶어...
(7:00)오전 7시
골짜기를 내려가기로 하다.
주먹밥을 만들고 텐트 안에 있던 셔츠와 양말을 빌려 텐트를 나가보니 5m 위에 역시 곰이 있었다.
도저히 나갈 수 없어서 이대로 텐트 안에 머물렀다.
8시 즈음 까지・・・・(알수 없는 글씨)그러나・・・・・(알 수 없는 글씨)을 지나갈 수 없다.
다른 멤버들은 벌써 하산한 걸까.
돗토리대학 반더포겔은 연락해 주었을까. 언제 구하러 오는 걸까. 모든것이 불안하고 두렵다...
다시 안개가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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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로기가 죽기직전 기록한 최후의 행적들>

7월 28일, 생존자 니시이와 타키의 발언을 토대로 3명의 행방을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3명 모두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체 발견됩니다. 얼굴 반쪽은 사라졌고 코, 귀는 뜯겨있었고 복부에서 내장이 흘러나와있었어요. 잔혹하게 살해한 불곰은 구조대와 같이 동행했던 사냥꾼에 의해 사살됐다고 합니다.

<사건 현장에 남겨져있던 것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열도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고 많은 일본사람들에게 불곰에 대한 위험성을 각인시켜줬습니다. 뿐 아니라, 불곰에게 희생된 3명의 넋을 기르는 위령비가 세워졌어요. 저도 이 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대학생들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당시 사건 희생자 소식을 전한 신문 - 출처 : 트위터 @nehitsuji>
- 타케스에 카즈토시(竹末一敏, 향년 20세, 1950 ~ 1970)
- 카와하라 요시타카(河原吉孝, 향년 18세, 1952 ~ 1970)
- 코오로기 모리오(興梠盛男, 향년 19세, 1951 ~ 19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