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일본에 개봉했던 나리야마 부시코라는 영화인데
유명한 고려장이랑 지금 적는 마비키가 다 나옴
그건 바로 마비키 인데
`솎아낸다`라는 뜻의 `마비키` 외에도
`신에게 돌려준다`는 뜻의 코카에시 혹은 더 직설적으로 `아이 죽이기`라는 뜻의 `코고로시`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모든 집에 일남일녀만 있는 마을도 존재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때 마비키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심했는제 18세기 이후에는 일본 인구가 거의 안늘었는데
물론 일본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도 막부부터 메이지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법률로 금지시켰으나 대도시에서는 몰라도 지방에서는 여전히 몰래 몰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마비키가 에도 막부의 과도한 징세로 가난한 일본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였나면 그 당시 수확량의 60프로를 거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백성들 대부분은 세금과 새로운 생명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일본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농촌을 착취할 수밖에 없었고 농민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금지시켜도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마비키는 근절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고 2차 대전 이후 혼란과 빈곤 탓에 일본 여러 곳에서 다시 마비키가 일어나게 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고토부키 산원 사건`인데 이시카와 미유키와 이시카와 다케시 부부가 버려진 아이들을 키운답시고 100명이나 넘게 굶겨 죽인 사건이었다.
부부는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버려진 아이들은 죽인다는게 당연한 것이 아니냐였으며, 미유키는 4년형, 다케시는 겨우 2년형의 처벌만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 악습은 에도막부와 일본 제국 시기에도 근절시키지 못했고
일본 열도 전역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1950년대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