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입니다.>
앙리 데지레 라르듀[Henri Desire Landru]
앙리 데지레 라르듀는 18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아들인 그도 그 성실함을 이어받았다.
20살이 됬을때 사촌동생과 사랑에 빠져 해버렸고 사촌동생을 임신시켜버리고 책임을 지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건축 사무소를 차렸지만 일을 잘 되지않았고 가족 6명이 길거리로 나올 위기에 처한다.
그렇게 앙리는 사기꾼이 되기로 한다.
1902년부터 1914년까지 앙리는 지방 여러곳을 오가며 사기를 계속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나쁜쪽으로 머리를 굴려 사람을 등쳐먹기만 하는 아들을 아버지는 부끄러워 견디지 못 하고 자살을 하고마는데 이걸 계기로 앙리는 변화하게 된다.
물론 좋은 쪽이 아니라 더욱 더 질이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말인데 하여튼 이렇게하여 푸른수염 앙리 데지레 라르듀가 탄생하게된다.
사기 때문에 여러번 감옥에 간 그는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이 붙잡히는걸까? 그것은 증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거같은거 남기지 않으면 붙잡히는 일은 없을거다.
결론은 죽이면 된다.
앙리의 범행은 신문 광고를 이용하였다.
"저는 아이 둘이 있는 남성입니다. 돈은 잘 벌고 있으며 정이 많고 성실하며 사교성이 풍부합니다. 결혼을 전제로 과부와 사귀고싶습니다"
앙리가 "잘 생겼고 뭐 저런 조건들이 갖춰져있냐?"고 물어보면... 사기니까 당연히 그런건 없다. 탈모였고 키도 작고 수염도 엄청 거슬린다.
그렇지만 제 1차대전으로 남편을 잃은 중년 여성들이 수없이도 많았기에 그의 사기는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잘 먹혔다. 앙리에게 다가온 과부들은 안정된 수입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 필요했는데, 앙리가 이를 잘 이용한 것이다.
1915년에 네 사람을 죽인 뒤 기란 부인을 첩으로 둔 앙리는 파리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한다.
푸른수염의 성이라고 불리는 관광명소가 된 이 곳은 근처 이웃과도 최소 300m정도는 떨어져있어 앙리가 일을 벌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리고 대형난로와 연탄을 구입하는데 이는 시체를 태워버리기 위해서였으며 1916년부터 1919년까지 여섯 사람을 죽였다.
그러다가 피해자중 한 사람의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소식이 끊겨 그 지역으로 가서 촌장과 대화를 나눠봤더니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있을때 대머리에 키가 작고 수염이 이상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남성이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장면을 보았고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그 여동생이란 사람은 파리에 있는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녀가 경찰서에서 사정을 설명하자 경찰들은 앙리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들어갔던 때가 앙리가 다른 여성이랑 알몸으로 성관계를 하고있을때였고 혼란스러워진 경찰들은 일단 물러난다.
그리고 얼굴을 본 경찰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생긴 놈한테 여자들이 여럿 달라붙은거지? 말이 되는건가?
그리고 이런 경찰들이 들이닥친 상황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키스를 하며 여유를 부리는 앙리를 보며 경찰은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앙리를 체포한다.
체포된 앙리는 파리에 있는 경찰서까지 호송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를 체포한 베란 경감은 앙리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앙리가 상의 주머니에 너무나도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베란 경감은 그의 상의 주머니를 뒤졌고 검은 수첩을 꺼냈다.
어째서 이런 수첩에 신경을 쓰는거지? 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본 경감은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 적힌것은 283명이나 되는 여성들의 신상이 빼곡히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283명을 조사해본 결과 10명은 실종된 상황이었고 여기에 대해 경찰은 앙리에게 끈질기게 물어봤으나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앙리는 시체를 찾지못했으면 유죄가 아니지롱~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시치미를 떼는 앙리를 버려두고 앙리의 집을 수색하며 별로 진전이 없던 경찰은 나중이 되서야 대형 난로에서 사람의 뼛조각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일단 물적 증거 없이 앙리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강화회의때문에 국민들의 시선이 좀 달갑지 않은 것도 있어 각 신문사에게 앙리에 대한 정보를 팔아대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앙리 데지레 라르듀를 보기위해 수천명의 방청희망자가 법원에 몰려들기도 했었다.
[당시 법정의 모습]
하여튼 물적증거없이 시작된 재판에서 나왔던 것은 대부분 "상황적으로 그럴듯한 것이다" 라는 것밖에 없었다.
즉, 그를 범인으로 몰고가기엔 좀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퍼포먼스 비슷하다고 여겼던지 앙리는 태연한 자세로 재판에 임한다.
피해자중 한 사람인 코론부인과의 대화도중 코론부인이 자신의 나이를 15살이나 적게 말한것 같다고 지적하자
"여자의 나이는 사춘기가 시작되고나서부터 세는겁니다!"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하질않나, 좌석이 없어 곤란해 하던 여성이 보이자 정중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권해주기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외에도 보통 남성이라면 부끄러워서 하지 못 할 일을 태연하게 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테지만 그의 행동이 먹히는 여성들도 있었다.
법정에서 앙리가 했던 퍼포먼스는 의외로 여성들에게 잘 먹혔는지 그의 여성팬이 많이 생겼으며 심지어 결혼을 하자고 말하는 여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선거가 있었을때 앙리 데지레 라르듀라는 이름이 4000표정도 나왔으니 그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고 그는 계속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법정에서 계속 보여왔다.
"나같은 것보다 당신의 영혼부터 구제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시는게 어떠신지?"
같은 어그로를 끌었고 이런 것이 당연히 배심원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었으며 결국 앙리 데지레 라르듀에게 내려진 것은 사형 선고였다.
앙리는 그 뒤에 지금까지 자신의 변호를 맡아준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한 장의 그림을 주었다.
그리고 앙리 데지레 라르듀가 사형되고난 후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을쯤에 변호사의 딸이 그림의 뒷면에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푸른수염의 경우는 벽의 뒤편에서 무슨 일을 벌이곤 했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난로 안에서 무언가를 구웠었습니다."
1967년 뒤늦게 공개된 앙리 데지레 라르듀의 이 발언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자백이었던 것이다.
죽어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앙리 데지레 라르듀[Henri Desire Land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