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입니다.>
1959년 2월 18일,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에서 창군 이래 최악의 불상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대장인 정구헌 중령(34세)이 사단장 서정철 준장(향년 39세)을 리볼버 권총으로 사살한 것이다.
당시 백인엽 소장과 미 제1군단장이 정찰 시범을 요청하였고, 이에 서정철 준장은 19일부터 대대 수색정찰 시범을 실시하도록 예하 부대에 지시를 하달하였다. 사건 전날인 18일, 서준장은 시범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예하 부대를 순시하였다. 당일 오후 2시경 도착한 제1대대는 대대 후방 야산에서 분대 단위의 시범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서준장은 화력 증강을 이유로 훈련 규모를 소대 단위로 확대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정구헌 중령은 지형 정찰을 새로 실시해야 하는 데다 일몰이 임박하여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반박하였다. 또한 “화력 증강은 위력정찰의 개념이지, 수색정찰과는 다르다”는 취지로 의견을 개진하였다.
이에 격분한 서준장은 지휘봉으로 정중령의 복부를 수차례 찔렀다. 평소 사단장의 강압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정중령은 결국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단장 앞에서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지나친 처사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항의하였다. 대대장의 반발에 더욱 분노한 서준장은 장갑 낀 손으로 정중령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경이 파손되었고, 그는 “잔말 말고 당장 내려가라”고 고함쳤다.
곁에 있던 연대장 송광보 대령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서준장을 말리며 대대장실로 데리고 내려왔다. 당시 시각은 오후 6시경이었다. 이동 도중 정중령은 사단장이 권총을 장전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느꼈고, 이후 자신이 피살될 수 있다는 강박적 공포와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대대장실에 도착한 뒤에도 서준장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정중령에게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뒷문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정중령은 뒷걸음질치며 대대장실 뒤편으로 물러난 뒤 자신의 권총을 장전하였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지 못한 서준장이 곧바로 뒷문을 통해 다가오자, 정중령은 약 3미터 거리에서 세 발을 발사하였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 서준장에게 그는 남아 있던 네 발까지 모두 발사하였다. 서정철 준장은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범행 직후 정중령은 특무대 요원들에게 즉시 체포되었으며, 현장에 있던 송광보 대령 역시 구속되었다. 군사재판에 회부된 정중령은 “서준장이 자신을 사살하려 하였기에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 당시 서준장의 권총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정구헌 중령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1959년 5월 20일 오후 2시경, 육군정보학교 야외 교정의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형 집행 당일, 그는 사형수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였다고 전해진다. 집행 직전, 과거 상관이었던 제2군사령부 법무부장 최문기 대령을 만나자 웃으며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였고, 참관을 위해 모여든 신문기자들에게도 담담히 손을 흔들며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군목 양석봉 중령의 기도와 설교를 들은 뒤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사건에 대하여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칠순 노모와 처자식을 두고 먼저 가게 된 점이 미안하다. 앞으로 개인적 목적을 위해 부하를 구타하거나 혹사시키는 군대의 악습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또한 나는 지금껏 양심과 신념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깨끗하게 죽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