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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으로 점철된 초능력 (괴담, 충격)
2026.06.09 15:24
관리자2(adm****)


<※ 브금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둔한 편이었다. 친구들이 흉가에서 무언가를 봤다거나 꿈이 들어맞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별 감흥이 없었고, 점집이나 사주 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서른을 넘겨 회사에 다니며 지은 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한 층을 얻어 혼자 살게 된 뒤로도, 내 하루는 늘 밋밋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고, 같은 계단을 내려가고, 같은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는 생활이었다. 그 건물에는 오래 산 노인들이 많았고, 나는 그중 몇과 얼굴을 트고 지냈다.

그 가운데 아래층 할머니와 가장 자주 마주쳤다. 출근 시간이 겹쳐서, 계단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스쳤다. 할머니는 내가 끼니를 거르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가끔 현관 앞에 반찬통을 놓아두었고, 명절이면 전을 부쳤다며 접시째 들고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인사만 했다. 그날 아침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처음으로 할머니가 거무스름히 보였다. 계단에서 마주쳤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목구비가 지워진 게 아니라, 그분의 모든게 거무튀튀했다. 복도의 형광등은 평소대로 켜져 있었고 창밖의 아침 햇볕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어디 가느냐고 인사를 건넸고, 나는 평소처럼 출근한다고 받았다. 할머니의 목소리만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방금 전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마땅한 답이 없어 그냥 잘못 봤거니 하고 넘겼다. 나흘 뒤, 할머니는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같은 층 사람에게 들었다.

그다음은 경비실 할아버지였다. 택배를 찾으러 내려갔을 때 유리창 안쪽의 그가 검게 보였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그 장면을 떠올리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경비실 책상엔 국화 꽃다발이 놓였다. 두 번까지는 우연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그러지 못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던 교복 차림의 학생이 검게 보였을 때는 설마 하는 마음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들었지만, 며칠 뒤 동네에 사고 소식이 돌았다. 같은 층에서 일하던 직원, 단골 분식집의 주인,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노인. 검게 보인 사람은 나이도, 장소도, 건강해 보이는 정도도 가리지 않고 수소문 결과 며칠 안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처음 한동안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 했다. 오래 산 사람에게서 먼저 빠져나가는 기운이 내 눈에만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가, 노인이 아닌 사람들이 검게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해서, 혹은 마음에 담아두어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싶어 내 자신을 되돌아봤지만, 정작 검게 보인 이들 대부분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골몰하다가, 나는 결국 설명을 포기했다. 검은 형체는 죽음이 가까운 사람에게 드리우는 표시였고, 나는 어쩌다 그걸 알게 된 사람이었다. 거기까지가 내가 닿을 수 있는 결론이었고,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점점 익숙해졌지만, 검게 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마주치면 나는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안쓰러움이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저 사람은 자기에게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장을 보고, 통화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 안타까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이 사람은 어떻게, 언제 죽을까. 나는 그 답을 끝내 확인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검은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며 멋대로 별의 별 상상을 펼쳤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몰래 들여다보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묘한 우월감 마저 들었다.

검게 보이는 사람은 어쩌다 한 명,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하루에 한둘이 전부였다. 출근길 지하철에도, 점심시간의 번화한 식당가에도 검은 형체는 드문드문 섞여 있을 뿐이었고, 한자리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검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죽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띄엄띄엄 찾아오는 것이라며, 나는 그 드문드문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 은행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밀린 공과금을 처리하고 현금을 좀 찾으려고 들른,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평일 오전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은 다음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창구에 앉은 직원도, 대기 의자에 줄지어 앉은 손님들도, 입구 옆에 서 있던 경비원도, 유아차를 세워둔 채 서류를 작성하던 젊은 여자도 전부 까맸다.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찬 사람 전부가, 예외 없이, 똑같은 검은 형체였다. 손에 쥔 번호표의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곧장 이 은행에 무슨 일이 닥치겠거니 생각했다. 강도가 들거나, 불이 나거나, 가스가 새거나, 이 안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데려갈 무언가가 곧 일어날 거라고.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번호표고 뭐고 간에, 서둘러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 등 뒤의 사람들을 두고 혼자 빠져나온다는 옅은 죄책감과, 그래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거리로 나온 순간, 그 안도감은 사라졌다. 버스에서 막 내리는 사람도, 유아차를 미는 여자도,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빠르게 걷는 남자도, 신호등 앞에서 발을 구르며 초록불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길 건너 카페의 통유리 안에 앉은 손님들까지도 전부 시커맸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거무튀튀했다. 나는 숨이 가빠지는 걸 느끼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가장 가까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 층 구석의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가 세면대를 두 손으로 짚었다. 찬물을 틀어 얼굴에 끼얹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역시 거울 속의 나도,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검었다.

얼마나 그러고 서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다시 거리로 나갔다. 누구든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외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거리의 풍경이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제각기 바삐 움직이던 그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전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검은 형체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누가 신호라도 보낸 듯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차도 끝, 늘어선 건물들의 지붕 너머, 그 위의 하늘을.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자 거리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만큼 조용해졌고, 그 조용함 속에서 나만이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올려다보는지 확인하려고, 그 검은 얼굴들과 같은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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