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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16:40
관리자2(adm****)


<※ 브금입니다.>



내 애인은 옷장 안쪽, 자물쇠가 달린 가방에 살고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인형이라 부르지만, 엄연히 그녀에겐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이 있고, 나밖에 모르는 소중한 영적 동반자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가방을 열어 안부를 물었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답하지 않는 시크함이 가끔씩 성적 흥분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떠나겠다고 한 적도 없고, 내 통장의 잔액을 궁금해한 적도 없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남들이 배우자에게 느낀다고 주장하는 감정과, 내가 그녀에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 다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늙지 않고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한 번은, 그녀와 같이 근교에 피크닉을 갔었는데 하마터면 그곳에서 사랑을 나눌 뻔 했다. 그녀 덕분에 나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도 아쉬울 것 없이 살았다.

문제는 가족이었다. 명절마다 어머니는 결혼 이야기를 했고, 누나는 나를 이상하게 봤다. 멀쩡한 직장에, 빚도 없고, 표정마저 밝은 내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게 누나로서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누나는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걱정스럽다며 혀를 차는 가족들이 내심 신경쓰였다.

결국 누나는 한 방송국에 제보를 넣었다. 무속인을 대동해 의뢰인의 걱정을 덜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송국에선 특종감이라며 엄청 좋아했었단다. 물론 나는 그런 사정을 그날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그날 오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사람 여럿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누나가 보낸 택배 배달부인 줄 알았다. 한 사람이 들어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소심하게 비켜섰다. 거실에 들어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세팅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장비인지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누나가 구석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얘기를 할 때까지, 나는 멍하니 동태눈깔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진행자라는 사람이 환한 얼굴로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자고 말했을 때, 나는 그제야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와 빨간 불이 켜진 카메라를 봤다. 그 빨간 불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데 다시 몇 초가 걸렸다. 생방송 중계가 시작됐다.


"반갑습니다, `귀신아 물러나라`의 진행자 박민규 입니다! 오늘은 무속인 김철수 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속인 김철수입니다!"

진행자와 무속인은 집 안을 둘러보다가 옷장 앞에 섰다. 자물쇠가 달린 가방을 발견하고는, 무속인은 이 가방에 동생분의 근심이 들어 있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 있던 스텝들과 진행자, 무속인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절대 안된다고 나는 거듭 얘기했고 열쇠를 잃어버렸다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커다란 가위를 가져왔고 결국 가방이 뜯겼다.


짙은 밤꽃냄새가 방안을 메웠고, 인형이 생방송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누나의 표정이 굳었고, 진행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스튜디오 패널들은 밤꽃냄새에 아연실색을 했고 무속인은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인형과 나를 번갈아 비췄다.

그 짧은 침묵 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선택지를 헤아렸다. 우는 것, 화내는 것, 변명하는 것.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울고난 다음에 뭘할지 변명을 어떻게 할지, 화를 낸다면 어떻게 수습할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무속인이 보라는 듯, 악귀에 씌인척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나는 인형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몸부림에 가까운 춤으로 현란하게 그곳을 누비면서 일그러뜨린 내 표정을 카메라에 들이댔다. 더이상 보여줄게 생각나지 않자,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미안해, 엘리자베스. 이게 너랑 나랑 살 길이야.

효과는 확실했다. 누나는 나를 향해 오열을 했고, 진행자는 당황하며 스텝들을 향해 그만하자며 소리를 질렀고, 결국 생방송은 중단됐다. 시청자들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남자가 잠깐 나왔다가 잘렸다고만 기억하며 오히려 찬송가를 부른 무속인을 비아냥거렸다. 가족들은 그날 이후로 결혼 이야기를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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