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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괴담] 행복이 담긴 유리병을 팝니다.
2023.03.26 19:32
관리자2(a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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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문구는 “행복! 유리병에 담아 판매합니다! 오늘 내로 연락주세요!”였다. 아래엔 전화번호가 있었다.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래된 전봇대에 붙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사진을 찍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보여줄 예정이었지만, 집안일이 바빠서 잊고 말았다. 저녁 짓기, 설거지, 빨래, 딸아이 간식 싸놓기, 재우기, 거실에 어질러놓은 장난감 치우기. 매일 밤 똑같은 일상이었다.

다음날 일어났는데 아내와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다. 직업상 아내보다 항상 일찍 깨어나야 해서 조용히 준비를 마치고 문 밖을 나섰다.

직장에서, 최근 회사 지출 내역을 갱신하고 있었다. 보통 내가 하는 일이 비슷하다. 하루에 아홉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표에 숫자 몇 개를 입력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 업무가 순식간에 끝나서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금요일이기도 했고, 주말이라 사람들이 다들 일찍 자리를 뜨니까.

퇴근길에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자주 하는 짓이다. 어렸을 땐 여행을 다니는 삶을 꿈꾸었다.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유럽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켈시를 만났다. 나쁜 뜻은 없다. 난 켈시를 사랑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한다. 이젠 그때만큼 자극이 없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으면, 의도치 않아도 혼자만의 인생 계획은 뒷전으로 미뤄져야 한다. 그 관계가 부부 사이가 되고 아기가 생기면, 딸을 유치원에 등록하고 더 보수가 좋은 자리를 찾아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등등등.

나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삶의 지점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렇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말 할 수 없다.

언제나와 같은 퇴근길을 걷는 동안 어제 본 포스터 옆을 지나쳤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지만, 전화해보고 싶었다. 장난 같은 건 줄 알았다. 누가 전화를 받고 “사랑합니다!”했다가 바로 끊어버릴지도. 아니면 성매매 업자와 이어진다거나.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전화했다. 연결음 한 번만에 누군가 받았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어, 안녕하세요…. 음, 포스터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광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언제 수령하시겠어요?”

“뭘 수령해요?”

“병이죠….”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했다.

“아, 그렇죠. 음.” 그러고 보니 일찍 퇴근했다고 켈시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받으러 가면 그녀는 꿈에도 모르겠지. “정확히 뭡니까? 판매하시는 물건이.”

“말씀드렸잖아요. 행복입니다. 포스터에 적힌 대로 유리병에 담겨있고요. 유리병이 제일 보존이 잘 되거든요. 비닐 봉지보단 튼튼하지 않겠어요.”

“음. 그렇군요. 뵐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쪽이 이상한 사람이면 곤란하니까 공공장소로 갑시다.”

우리가 정한 공공장소는 1 마일보다 좀 멀리 있는 스타벅스 주차장이었다.

아니, 진지하게 행복이 담긴 병 같은 걸 살 생각은 없었다. 99 퍼센트 마약을 파는 거라고 확신했다. 헤로인을 병에 담았을 수도. 문득 깨달았는데, 잠깐만, ‘행복’은 어떤 뒷골목 마약의 별칭일 테고 난 마약 거래를 하게 되겠지. 혹시 그 사람 경찰이면 어쩌지? 이대로 체포되나? 하지만 내면의 어떤 목소리가 나더러 계속 걸으라 하기에 그저 따랐다.

주차장에 서서 문자를 보냈다.

나: 도착했어요.

상대방: 좋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 뭘 타고 오시나요?

상대방: 은색 캠리요.

마지막 답변을 받자마자 그녀의 차가 진입하는 게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위치 근처에 차를 대었다. 차에는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납치에 대한 공포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내려 보도에 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없이 자기 차로 오라고 손을 흔들기에, 나는 다가갔다.

그녀는 이십 대 중반쯤으로 젊어보였고 곱슬 금발이었다. 새하얀 피부가 새까만 올블랙 의상과 대조되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착한 마녀 글린다가 서쪽 마녀의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날씨 좋네요.” 그녀가 인사했다.

“아, 그렇군요. 미처 몰랐네요.”

“병 때문에 연락 주신 분 맞죠?”

“네, 접니다.”

“좋아요. 자,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유리 메이슨 자를 건네주었다. 2 인치도 안 될 크기였다. 안에는 빛이 들어있었다. 전구가 들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빛이었다. 마치 햇빛을 담은 것 같았다. 오후의 한낮에도 그것은 반짝였다. 작은 수정의 집 안에 사는 조그마한 태양이나 우주 같았다. 경이로운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신기하죠?”

“이게…, 이게 뭡니까?”

“한, 세 번째로 물어보시는 거 아닌가요. 말씀드렸잖아요. 행복입니다. 유리병에 든 행복.”

“이걸 어떻게 하는데요?”

“갖고 있으세요.” 그녀는 그렇게만 말했다.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문자 보내시고요.”

그녀는 차에 도로 타려 했다.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파는 거 아니었나요? 얼마입니까?”

“걱정 마세요.” 그녀는 미소지었다. “지불하실 테니까.”

그녀는 문을 닫았고 나는 후진해 빠져나가도록 비켜주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내가 들고 있는 게 뭐야? 시선을 내려 다시 병을 보니 그 광휘에 그저 홀리는 듯 했다. 주머니에 집어넣어도 바지를 뚫고 빛이 보였다. 나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맑았던 날씨가 급격히 돌변해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비가 내렸다. 예보엔 비 소식이 없었는데, 안 그랬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겠지. 최대한 젖지 않게 피하며 집으로 달렸다. 마침내 나의 피난처 같은 집이 있는 빌딩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 현관 앞에서 키링에 열쇠가 빠진 걸 깨달았다. 젠장, 또 잃어버리다니 말도 안 돼.

문을 두드리며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야, 열쇠가 어딨는지 모르겠어.” 반대편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을 때 날 반긴 건 키 크고 덩치 있는 남자였다. 떡 진 머리에 수염은 지저분했다. 그는 “잘 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만.”라고 말했다.

“아!” 나는 당황한 채 말했다. “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는 문을 닫으며 낄낄 웃었다.

아파트 33호.

여긴 내 집이다. 내가 안다. 5년 동안 33호에 살았다. 그럼에도 내 집이 아니다. 집 내부가 보였는데, 가구들도 전혀 다르고, 벽지 색도 다르고, 모든 게 달랐다. 내 머리를 한 대 치고 싶기도 했고 약에 취한 것도 같았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켈시에게 전화해서,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잠시 내가 착각한 거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주소록에 켈시의 번호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 핸드폰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와 주고받은 문자가 없다. 통화 기록도 없다. 사진도 없다. 공장 초기화라도 된 것 같았다. 내가 못 본 사이 그 여자가 핸드폰을 바꿔치기라도 한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켈시의 번호를 입력하려 하는데,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전에는 뇌리에 새긴 듯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 업무용 컴퓨터에 있는 모든 연락처를 복구하기로 했다.

아직 비가 내렸기 때문에 단지 앞을 지나는 버스에 뛰어올랐다. 사무실이 있는 번화가로 이동하는 내내 젖은 신발만 내려다보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했다.

빌딩에는 인증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 시에 카드키가 필요하다. 언제나 지갑에 넣어두고 다녔다. 언제나. 하지만 이거 참, 놀랍게도…. 없었다. 약속이 있는 손님이나 카드를 잃어버린 직원들을 위한 대비책으로 설치된 스피커를 눌렀다.

뚜르르르-

“안녕하세요 팀입니다, 카드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제 사원번호는….” 생각나지 않아서 말을 잇지 못했다.

스피커 너머로 목소리가 나왔다. “팀? 안 들립니다. 사원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음, 기억나지 않아서요, 그게….”

“괜찮습니다. 성함이랑 부서만 알려주세요.”

“어, 재무요. 재무팀 소속입니다. 이름은 팀 브룩스 입니다.”

“잠시만요.”

30초 정도 후에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희 빌딩에 팀 브룩스라는 직원분은 없는데요. 예약을 하고 오셨습니까?”

나는 놀라 뒷걸음질치다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한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사무실에 있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하루만에 증상이 악화되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었다. 내 손을 바라보는데 이게 내 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주변을 둘러싼 세계가 붕괴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이의 머릿 속에 들어앉아 남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문자가 왔다. 즉시 번호를 확인해보니 그 여자였다. 내게 병을 준 사람. 문자를 보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대방: 안녕하세요. 어떤가요?

나는 기겁한 채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렇게나 무심할 수 있다니 화가 났다.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던 거다. 그녀의 짓이 틀림없다.

나: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상대방: 아직 끝난 게 아니랍니다.

너무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질 뻔했지만 가까스레 참았다. 주머니에서 병을 꺼냈다. 병은 변함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병을 향해 소리치는데, 미친 놈처럼 보였을 것이다.

반짝이는 유리를 내려다보며 한가지를 깨달았다. 더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은 기억난다. 그러니까, K로 시작했던가, 아니면 C였나. 마음속에서 그녀를 그려낼 수 없었다. 아내가 있다는 건 안다. 확실하다. 왜냐면 딸도 있으니까. 내겐 아내와 딸이 있다. 그냥,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도, 생일도, 함께 했던 기억들도.

둘은 실존한다.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 아침에도 봤잖아?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향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처음 데이트는 어땠더라? 결혼식은 했었지? 첫키스는? 내 딸은… 아니 아들이었나? 애초에 애가 없었던 걸 수도. 하지만 내 아내는, 아니 여자친구는, 진짜였어. 확신해. 생각이 나를 파괴했다. 더는 그녀가 기억나지 않아.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 빌딩 밖에 그대로 서있었지만, 왜 여깄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일 했었나? 일을 하긴 했을 거 아냐. 비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며 코와 뺨을 얼얼하게 했다. 집에 가고 싶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 지붕 아래 내 몸을 누일 수 있게 해주는 하찮은 사무직을 계속하고 싶다. 그 모두를 원한다. 나는 흠뻑 젖었다. 비참했다. 부모님도, 어린 시절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한테 친구는 있었나? 빗속에서 지금 뭐 하는 거지?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병을 움켜쥐고 있다. 내 평생에 가장 확고하게 기억나는 유일한 것이 이걸 내게 준 여자였다. 행복이라 하면서. 이건 행복을 주지 않았다. 고통을 주었다. 아픔을 주었다. 생에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병을 깨요, 팀.

반대쪽 손을 보았다. 저무는 태양과 비 내리는 하늘 아래, 병은 정말 주위의 어떤 가로등보다도 밝게 빛났다. 그녀의 말대로 따르기 위해 병을 깬 게 아니다. 화가 나서 깼다. 분노해서 깼다.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머리 위로 팔을 치켜들어 재빠른 동작으로 내려쳤다. 병은 발치의 콘크리트 위에 조각났다.

그 어둡고 소름끼치는 공기와 비가, 나를 중심으로 폭발의 충격파가 소멸하듯 사라졌다. 병 안의 따뜻하고 노란 빛이 순식간에 땅으로 퍼지고 하늘로 올랐다. 우주의 탄생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신이 손가락을 튕기고 “빛이 있으라”라고 말하듯이. 나는 거기에 빨려들어갔다. 더는 길거리도 비도, 어두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별에 수직 낙하하는 기분이었다. 추운 겨울밤 불 앞에 앉아 온몸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감싸이는 느낌.

그리고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불 위에 누워있다는 걸 바로 느꼈다. 등에는 아내가 살짝 닿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유리를 뚫고 내 얼굴을 비추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금요일 아침이었다.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한 병 더 필요해지면 연락하세요:)

회사엔 아프다고 전화했다. 딸의 방에 몰래 들어가 키스로 깨우며 오늘은 유치원에 안 가도 된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하루를 보낼 거니까. 딸은 웃으며 기지개를 켜고 하품하다가 몸을 웅크리고 다시 잠들었다.

침대로 돌아와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몇 시간이고 놓지 않았다. 결국 딸이 우리 방에 들어와 깨워주었다. 침대로 뛰어들어 일어나라고 소리를 쳤다. 어제였다면 그게 싫었겠지. 어제였다면 많은 것들이 싫고, 단조롭고, 지루했겠지.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딸을 나와 켈시 사이에 눕혔다.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것이다. 오늘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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