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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20:33
관리자2(adm****)




청년은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아래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사를 한답시고 헤집어놓은 보도 블럭과 

불법주차로 엉망이된 길들.
전봇대 아래에 

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들.
무단횡단을 하는 아줌마들과 

미친 듯이 크락션을 울려대는 차들.
마지막 풍경치곤 상당히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청년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잠시간 그렇게 숨을 참고있던 청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굳힌 듯 

난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봐. 지금 뭐하는거야?”
느닷없이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청년은 난간을 올라가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이제 막 옥상으로 올라와 

당혹스런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고있었다.
“위험하니까 당장 내려와. 어서!”
남자는 천천히 청년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남자의 외침을 들은 청년은 

약간 난감해 하며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급작스런 방해에 고민하던 청년은 

이내 눈을 꼭 감고 난간위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어? 이런 젠장.”
남자는 급히 몸을 날려 청년에게 달려갔다.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짓이야?
무슨 힘든일이 있길래 저기서 뛰어내릴 생각을해?”
성난 듯 쏘아붙이는 남자의 말에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던 청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크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디 한번 설명해봐.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도대체 죽으려는 이유가 뭐야?”
남자의 말에 청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크게 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요. 어릴때는 참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어요.
외동아들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정이 많으신 분이었거든요.
집이 제법 여유가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도 많았어요.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죠.
그런데 그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진지하게 말하던 청년은 갑자기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네. 뭐 흔하디 흔한 신파극이에요.
조금 지루하실지도 모르지만 

물어보셨으니 끝까지 들어주세요.
제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청년의 비극은 어린시절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신호위반 차량. 자식을 보호하려던 어머니.
오열하던 아버지.
마음속에 새겨진 죄책감.
그리고 아버지의 원망.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들어온 날이면 

그는 욕설과 손찌검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보다 키가 더 커진지 오래임에도 

청년은 아버지에게 반항한번 하지 않았다.
청년에 가슴속에 있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청년은 스스로 벌을 받고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원망이 약해지고 어머니를 잊을 즈음,
청년은 어쩌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 올랐다.
아버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었고 

가슴속에 담긴 죄책감이 사라지던 그 시기에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청년에게 새엄마를 소개시켜줬다.
가식으로 가득 찬 새엄마는 

청년의 눈에 

돈을 보고 달려든 불여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청년의 죄책감은 사라지는 대신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새엄마의 멸시어린 눈빛과 

허영심 가득한 소비는 

그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으며
그와는 반대로 가세는 점차 기울어져 갔다.
아버지는 이성이 마비된 듯 

새어머니에게 홀려 

빠른 속도로 가사를 탕진했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청년의 가족은 지하 단칸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비록 심각하게 틀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진짜 혈육인 아버지마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도 눈물하나 흘리지 않던 새엄마는 

이제 노골적으로 청년을 미워했다.



이야기를 마친 청년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삼류 신파극 같죠? 

남이 듣기엔 그렇게 들릴 거에요.
그런데. 이게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가 죽고.
절 사랑하던 아버지가 절 원망하고.
이제는 절 미워하는 새엄마만 남았어요.
집안꼴은 엉망인데 

새엄마는 돈쓰는데만 정신팔려 있다구요.
제가 죽는 이유 물어보셨죠?
이게 제가 죽으려는 이유에요.”
남자는 청년의 말이 끝났음에도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할 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튼 간에 고마워요. 한번더 기회를 줘서.
아직도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생기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게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절 구해주시고 

이야기까지 들어주셨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청년은 남자에게 꾸벅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늦은 시간 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던 청년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아까 자신을 구해준 남자였다.
청년에게 달려온 남자는 숨을 고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참 찾았네. 설마 또 어디가서 뛰어내렸나 했다니까?”
청년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그러겠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힘들게 구해주셨으니까요.”
청년의 말에 남자는 급속도로 낯빛이 어두워졌다.
편치않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 남자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사연은 잘 알겠어. 

자살하려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런데 말이야. 나도 사정이란게 있거든.
네 말 듣고 조금은 흔들렸지만 그래도 자살은 안돼.”
청년이 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전에 

남자는 청년의 몸에 

날카로운 칼을 힘껏 찔러 넣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청년을 보며 

남자는 씁쓸한 얼굴로 

청년의 지갑과 금품을 꺼내어 챙겼다.
“나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아.
사정은 딱하지만 어차피 죽으려고 했으니 

그냥 이해해.
강도를 만나서 죽은 거면 모를까. 

자살하면 보험금은 못타지.
나도 빚이 좀 있어서 

그 불여시 같은 여자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어.
잘만 처리되면 보험금에서 크게 뚝 떼어준다길래 

몰래 쫒아다니면서 기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살하려고 해서 어찌나 놀랐는지.....”



청년은 꺼져가는 눈빛으로 

힘겹게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너한텐 죽는 이유가 중요하겠지만 

나한테 죽는 방법이 더 중요하거든.”
찜찜해 보이는 남자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청년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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