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은 내가 초등학교때
굉장히 큰풍파를 겪었었다.
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큰 수술을 받기도 했었고.
아버지는 한동안 어린 내가 걸려서 일을 못나가는바람에
우리는 꽤 어렵게 지냈었고
어머니의 요양이라는 이름하에
김포 산골자락 어떤 집의 작은 창고 같은 작은곳을
개조해서 살았었다.
변기도 없는 작은 화장실 하나.
우리 가족이 자는 안방이자 독서실인 작은방
거실과 부엌이 붙은 큰 방 .
그래도 매일 도시생활만하다가
시골에 처음내려와서 그
야말로 자연속에서 뒹구는거 자체가
나한텐 나쁘진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즐거운 기억뿐이었으니까.
다만, 우리 부모님은 거길 다시 떠올려보면
굉장히 싫어하신다.
지난날의 어려움도 동반했겠지만,
그 동네에서 받았던 눈초리라던지.
(애들이 실패해서 시골에 내려왔다)
남의 건물 작은 지하실 창고를 고쳐서
세 사는게 썩 좋아보이진 않았을테니까.
시골은 특이하게 해가 항상 빨리졌다.
아무리 해가 빨리뜨고 해가 길어지는 계절이어도
내가 기억나는 시골의 저녁이란.
계절과는 상관없이 ,
넓게 드리워진 논밭과
작은 산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진 하늘,
벌겋게. 그와 섞여 검게 물드는 하늘이었다.
나는 그당시에 작은 킥보드를 타고
동네를 쉬지않고 누볐는데
그때의 나는 지금은 상상할수없을정도로
굉장히 말많고 사교적이었던거같다.
동네 어르신들한테 다 인사하고 다니고
참견하고 다녔으니까.
근데 그때마다 항상 어르신들이
하는말이있었다.
"해 지면 얼른얼른 집에 가야혀.
밤이 빨리 찾아오는만큼
이상한것도 다 같이 오는겨.
사방팔방이산이니까.
여기도 저기도 다 제 집이니까."
동네에 같이사는 고모 할머니도, 구멍가게 할머니도.
윗집사는 최씨 할아버지도 아무튼간 그렇게 항상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마라 하며 나한테 말해줬고.
나중엔 엄마도 그 소리에 일찍일찍 다녀라 라고 해서
아마 노을이 조금이라도 지는 5시 6시 경이면
집에 빠르게 뛰어갔던게 기억난다.
실제로 다녀도 아무일 없구만, 왜들저러는건가.
어린 나는 굉장히 불만을가졌었지만
그때에는 어른말씀을 잘 들어야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또 있어서,
어찌저찌 억누르고 시간을 잘 지키고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는달랐다.
아무래도 일을 하셔야 했기때문에
조금이라도 먼 지방에 가서 일이라도 하는 날에는
늦은 밤에 돌아오거나, 이른 새벽에 차를 몰고
돌아와야 했던것이다.
아빠가 나물 할머니를 만난것도 그 때였다.
아빠가 지방쪽에 일을 얻어
새벽에 나가고 새벽에 들어오게된 주가 있었다.
마을쪽을 벗어나면
꽤 긴 산을 뒤로 한 채 넓게 논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로 어설픈 아스팔트길이 깔려있다.
아버지의 차는 늘 그곳을 지나갔었다.
그런데 그 곳을 지나는 언젠가부터 .
아버지는 어떤 할머니를 보았다고 했다
구부정한 허리, 작은 꽃무늬가 그려진
전형적인 할머니의 옷.
몸빼바지.
그리고 파란색 소쿠리에 나물을 잔뜩 진 할머니.
그리고 그 시각은 항상 늦은 새벽.
헛깨비는 아닐까?
아버지는 문득 두려웠다고 하셨지만
그분은 늘 그곳을 지나다녔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할머니에게 닿아도 통과한다던지
할머니가 사라지는 일따윈 없어서
나중엔 그냥 할머니가 부지런하시네 생각하게됬다고 했다
그러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늦은 새벽 .
아버지는 여지없이 할머니를 마주쳤다.
할머니를 만난 아버지는 조금 고민했다고 했다.
`이제와서 아는척을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도 힘들어보이는데.`
아버지는 곰곰히 고민하다가
차에서 내려서 할머니에게 다가갔고
실례가 되지않는다면 태워드리겠다며 할머니에게 제안했다.
"젊은 사람이 맘이 곱네.
난 괜찮여 금방가면 집이니깐."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을 했고
그날 아버지는 그냥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몆번 마주칠때마다 인사를 주고받았고
할머니는 그때마다 차 타는걸 거부하며
괜찮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지방에서 받은 일을 마무리짓고
집에돌아가던 마지막 날.
그날도 나물 할머니를 마주쳤다고 했다.
"할머니 저 오늘부터는 이제 여기 안지나갑니다.
좀 가까운데로 가서 내일부턴 다른길로가거든요."
아버지가 이야기하니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오늘은 한번 태워줘봐봐 라고 하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가 말하는대로 댁으로 모셔드리는데
할머니는 조잘조잘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아들 셋이 있고 다 장성해서 손자 손녀가 있다.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아들 내외들 다 사이도 좋은거같다
할머니의 자식자랑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할머니가 가달라는곳으로 차를 몰았다.
울퉁불퉁 어설픈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사람이 다져놓은 흙바닥길을 달렸다
바닥이 흙바닥으로 바뀌면서
점차 풍경은 산이 더 많이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뒤에 탄 할머니는
어떤 산이 보이는 어귀쪽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할머니 . 여긴 집이 아니시잖아."
"아냐 아냐. 저기 봐 불빛이 있지?
늙으면 잠도 없는거야
영감이 나를 마중나올라고
저렇게 안자고 불도 켜놨잖어
여기서 걸어가면 금방이야.
얼른가. 고마워 고마워"
할머니는 아버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내려서는 연신 아버지에게 고맙다고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가리키는곳엔
과연 파르스름하지만 어둑어둑해서 잘 보이진 않는,
집에서 보이는듯한 희미한 불빛이 깜빡였다고 했다.
할머니는 갖고있던 소쿠리를 들고선 내렸는데
그 와중에 소쿠리에 담긴 나물들이
후두두 차에 몆개 떨어졌다고 했다.
지저분한것도 아니고 나물인데 뭐.
할머니께 주워드리려는 찰나
할머니는 아휴 늦었어를 연발하며
고마워 조심히 가. 하는 말과 함께
발을 바삐 움직여 집까지 난 작은 샛길로
걸어들어갔다고 했다
할머니를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려 내려오는데
아버지는 무언가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할머니와 왔을때에는 술술 나오던 찻길이
내가 과연 이 길을 지나왔던가? 싶은 이질감이 들었단 것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아침 날이 밝아서야 집에 들어왔고
어머니께 엄청난 구박을 들으셨다.
어딜 갔다 이렇게 늦게왔냐는 말에
아버지는 사실을 토로하였다.
엄마와 나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어렸던 내가 좋은일 하다가 늦게왔구만 ,
너무 뭐라고 하지 말자며 이야기 했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주무시고
아버지의 차를 청소하겠다는 어머니는 차쪽으로.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한참뒤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세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어머니가 툴툴 거리셨다.
"어디서 뭘 하다왔길래 차 안에 마른 풀이 그렇게 많아?"
아버지는 마른풀? 하더니
할머니가 소쿠리에서 나물을 쏟았다고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처구니 없어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물은 무슨, 바싹 마른 잔디같은게
잔뜩 떨어져있던데.
짜증나서 차 겉에만 닦고 안은 안치웠어."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차로 달려가셨고
아버지의 눈에 들어온건 무덤 봉분에서나 자랄법한
잘 정돈된 노랗게 마른 잔디풀들이 차 뒷자석 바닥에
후두두 떨어져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후에 께름칙해하던 아버지는
할머니를 만났던 그 마을 어귓쪽 길은
다시는 운전을 안하셨다고 했다.
꽤 시간이 흘러서
내가 초등생 고학년이 되어갈때쯔음.
아버지는 궁금증에 시간을 조금내어서
그 길을 지나가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 어귀를 돌다가
낯익은 길을 발견해서
이 길이구나 싶어 그 길을 따라갔는데.
그 길의 끝은 할머니를 데려줄때와는 정 딴판인
숲속 그 자체였다.
애초에 아스팔트가 끊겨있는,
차는 들어갈수 없고
사람이 다져놓은 흔적이라곤 조금도 없는숲속길.
그후로 아버지는 다시는 그쪽길로 차를 몰지 않으셨다.
나중에
우리 집안이 가세를 회복해서 돌아갈때즈음 알게된건데
그쪽에는 인씨 할머니라고
노인 두분이서사는 작은 집이 있었다고 했다.
두분다 성실히 사는 분이셨는데
특히 인씨 할머니는 나물을 취미삼아 캐서 장에 파는분이셨다고.
이후로 돌아가시고
아마 집터를 묘지로 쓰고 있지 싶어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왠만해선 새벽에 차를 몰 일을 현저히 줄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