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입니다.>
김동우는 오늘이 벌써 여섯번째 면접이다. 이제 20대 후반이지만 아직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였다.
전에 잠깐 작은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몇 달을 못 가서 퇴사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왔으니 계속 대기업에 서류를 넣어보고 있었다. 면접까지도 못 간 회사도 있었지만, 가까스로 면접을 보더라도 결과는 언제나 탈락이었다.
김동우는 요즘엔 퇴사를 결심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에도 현관 밖까지 마중 나오는 엄마를 보는 게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사실 오늘 면접도 자신이 없었다.
김동우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는 5분 뒤에 온다. 사람들로 붐빈 버스 정류장에서 김동우는 전광판을 바라보는 체 하지만, 아까부터 온통 신경이 쓰이는 것은 정류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한 노인이다.
‘저 할아버지는 뭐 하는 거지?’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 듯 하고, 노인은 근처 가게들 안을 훑어보며 두리번거린다.
김동우는 계속 전광판을 바라보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척 하면서, 그 노인을 힐끔 훔쳐보고 있다.
아뿔싸. 이번에는 김동우가 그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김동우는 바로 눈을 피했다.
다시 주위를 보는 척하며 노인을 힐끔 보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 확실해보였다.
‘버스 노선을 물어보려는 건가?’
“저기…”
“네?”
“미안한데, 젊은이. 나 혹시 빵 하나만 사줄 수 없을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던가, 김동우는 생각했다.
노인은 버스정류장 뒤쪽의 빵집을 가리켰는데, 노인에게서 나는 악취에 김동우는 바로 숨을 참았다. 노인이 보는 앞에서 코를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돈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원… 이거 미안하지만, 한 번만 안되겠나?“
“어…”
“내가 이틀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서…”
노인은 아주 말랐다. 김동우는 그가 아마 노숙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인가? 김동우도 지금 돈벌이가 없어 지갑 사정이 넉넉치 않은 데다가, 노인의 부탁이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정류장에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절하자니 눈치도 보였다.
‘사줘야 하나? 고작 빵 하나긴 한데. 아마 주변 사람들도 다 들었겠지…’
김동우는 문득, 면접 날에 도와준 노인이 알고 보니 회사의 회장이라는 흔한 클리셰가 생각났다. 옷차림을 보면 분명 노숙자임이 확실하지만, 클리셰가 생각나 피식 웃은 김동우는 기분 좋게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시간도 좀 여유 있고,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다 나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하자. 면접 날에 이런 작은 선행 정도야.’
김동우는 집에서도 일찍 나왔기 때문에, 면접 장소에는 30분 정도 일찍 도착할 예정이었다. 김동우가 얕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답했다.
“예, 어르신. 가시죠.”
“정말로? 아이고, 고마워.”
노인은 아이처럼 기뻐하며 앞장서 빵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고민도 없이 단팥빵 하나를 골랐다.
“어르신, 하나로 되세요?”
김동우는 애초에 하나만 사줄 생각이었지만, 의례적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응? 어어, 괜찮어.”
김동우는 체크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넸다. 빵을 사고 나면 잔액은 이제 딱 2만원 정도 될 것이다. 직원이 단팥빵을 결제하는 사이, 창밖으로 때마침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가 떠나는 게 보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직원은 눈치껏 김동우가 아닌 노인에게 빵을 건넸다. 노인이 그 빵 하나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버스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마냥 번거롭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빵집을 나오자마자 노인은 봉지를 뜯고 빵을 한입 베어물었다. 빵 부스러기가 노인의 턱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고, 고마워. 이런 젊은 청년이… 참 고마워. 요즘에 이런 젊은 사람이 정말 흔치 않은데 말이야.”
“아닙니다, 어르신.”
김동우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정류장으로 가려는 찰나, 노인이 빵을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 근데, 빵을 먹으니까 목이 막히네… 혹시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만 사주면 안될까? 아니면 물이라도 말이야.”
김동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면접 시간엔 늦지 않겠지만, 다시금 귀찮아졌다. 얼른 이 노인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김동우는 곧장 노인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 예예. 근데 제가 지금 좀 급해서요. 면접이 있는 날이라. 사드릴테니 얼른 가시죠.”
“아이고, 그래? 요즘 취업이 어렵다며. 옛날에는 말이야, 우리는 좋은 회사, 좋은 직업 같은 거 따질 겨를도 없었어. 총각도 그런 거 따지거나 재지 말고…”
“아, 그 일단 제가 정말 급해서요. 우유 먼저 사러 가시죠.”
“아, 그래그래. 고마워.”
편의점은 빵집과는 다른 건물에 있었는데, 40보 정도 걸으면 되었다. 김동우는 이번에 노인에게 흰우유 하나를 사줬다. 노인은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우유를 마시며 김동우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총각은 그럼 자취하나?”
“아니요, 부모님이랑 삽니다.”
“그래그래. 요즘에 뭐 독립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 때는 그렇게라도 돈을 아껴야 돼. 응? 무슨 말인지 아나?”
“아, 예예.”
“그래, 총각은 뭘 좀 아는구먼. 그래도, 나중에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 거 아냐. 그러려면 요즘 사람들은 회사 보는 눈을 좀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이지. 인생은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천천히 가도 결국 갈 사람은 가는 거야, 응?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회사도 너무 큰 데만 보지 말고 눈을 …”
노인은 계속 중얼거리며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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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야,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그냥 일부터 했어. 근데 하나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어. 근데 세상이 한 번 꼬이니까 쭉 꼬이더라고, 응? 사람 인생이라는 게 참 별거 아니야, 한순간이야.”
“하…”
드디어 버스가 왔다. 김동우는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노인에게 말했다.
“아! 할아버지, 이 버스라서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가야지. 잘 가요, 젊은이. 정말 고마워.”
사람들은 버스 입구로 몰려와서 줄을 섰다. 김동우도 사람들을 따라 맨 뒤에 섰다. 김동우는 얼른 이 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이제 김동우가 버스에 탈 차례가 왔다.
‘이제 됐다.’
김동우가 버스가 올라타 카드를 찍었다.
버스기사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또 다시 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어어! 나도 같이 타! 잠시만 기사양반, 저 총각!”
김동우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버스기사가 노인의 외침에 다시 문을 열었다.
“아이고, 고마워. 정말 큰일 날뻔 했네. 아휴, 총각. 같이 가자고.”
“어르신, 카드 찍고 들어가세요.”
“으응? 무슨 카드?”
“돈 없으시면 내리셔야 되요.”
버스기사가 노인에게 단호하게 말하자, 노인은 김동우를 바라봤다. 도움의 요청이다. 노인이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버스기사는 다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타실 거에요, 안 타실 거에요.”
만석인 버스의 사람들은 모두 김동우와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버스기사가 김동우를 바라봤다.
“거기 아저씨, 일행이에요?”
김동우는 어쩔 수 없었다.
“하… 네, 기사님. 다시 찍을게요.”
“참 다행이야. 고마워, 총각. 정말 다행이야. 큰일날 뻔 했다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김동우는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노인은 갑자기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 그게 말이야. 사실 손녀가 하나 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다쳤다는 연락이 와서 말이야.”
아까는 자식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김동우가 보기에 그 노인은 핸드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버스를 타려는 그 잠깐 사이에 누군가와 연락을 했을리는 더더욱 없었다.
노인이 늘어놓는 헛소리에 김동우는 이제 반응을 해주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때마침 한 여학생이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줬다. 그 덕에 김동우는 노인과 조금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한두사람을 그 사이에 둔 것 뿐이지만, 가까이 있으면 냄새가 심하게 나니 그것조차 다행이었다.
‘어디까지 따라올 속셈인 거지… 정말 징하다. 설마 면접장까지 따라오면? 아 진짜 미치겠네.’
김동우는 노인과 눈을 절대 마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창밖만을 바라봤다.
[ 삐이 ]
그 노인이었다. 노인이 하차벨을 눌렀다.
‘이 근처에 학교가 있었나…? 아, 참. 어차피 거짓말이었지. 그래도 내린다니 다행이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뒷문이 열렸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인을 포함해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모두가 어색함 속에서 버스 안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기랄. 이건 뭔 또 신종 지랄이야!’
5초간의 정적이 지난 후, 버스기사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 삐이 ]
이번에도 그 노인이었다. 김동우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뒷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다시 버스 안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집에서 30분 일찍 나온 건 어느새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아슬아슬하다.
[ 삐이 ]
또다.
‘저 늙어빠진 노인네! 이번에도 안 내려? 제발 내려라. 나한테 해코지를 하려는 건가? 면접 보러 간다는 걸 괜히 말했나? 내가 대체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빵도 사주고, 우유도 사주고, 버스를 타고 싶대서 버스비도 내줬잖아!’
김동우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버스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이미 클리셰 같은 재미난 상상은 잊었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문이 열렸지만, 역시나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버스기사가 거울로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다.
“자꾸 누구에요! 누가 누르는 거야! 예? 안 내릴거면 누르지 마시라고요. 누구에요? 진짜 마지막입니다.”
버스기사는 다시 출발하면서도, 화를 참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진짜 짜증나게. 안 그래도 차가 막히는데 지금 뭐하자는거야? 아오, 진짜.”
그러나 얼마 안되어,
[ 삐이 ]
또다. 또 그 노인네다. 그 소리가 유난히 길게 울렸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하. 진짜 안되겠네.”
버스기사가 이번에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에요? 보신 분 있으세요? 안 내릴 거면 누르지 말라고요!”
노인이 벨을 누르는 걸 본 사람들은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어르신, 어르신이 누르셨어요?”
“아니, 그… 저 기사 양반. 미안해요.”
“내리세요. 안 되겠어요.”
“내가 치매가 좀 있어서. 미안해요, 미안해.”
갑자기 버스 기사는 김동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 젊은 양반. 아까 일행이라고 했나? 이 분이랑 일행 아니지?”
“어… 그게…”
“총각, 마지막 부탁이야. 한번만 도와주게.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 부탁만 들어주게.”
김동우는 이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빵을 사주고, 물을 사준 것까지는 다 괜찮다. 그런데 이젠 정말 면접에 늦었다. 이미 늦을 게 확실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면접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미 6번째 면접인 김동우는 면접장에 늦게라도 도착해 뭐라도 해야 한다. 그는 정말 간절하다.
“아니, 내가, 그, 치매에 걸려서 말이야.. 내가 자꾸 깜빡깜빡해. 기사양반, 한번만 봐줘요 응? 그래도 내가 아버지뻘은 될텐데, 노인네들은 가끔 오락가락한단 말이야…”
다시 시작된 해명이었다.
“총각, 진짜 딱 한번. 딱 한번이면 돼. 이번 한번만 도와줘… 자네라도 나랑 같이 내려주면 안 되겠나. 자네가 날 도와줬는데, 나도 뭔가 보답하고 자네를 보내야지…”
김동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노인이 계속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 소름끼쳤다.
마주칠까봐 이 버스정류장 근처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는 또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아까 처음 만난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나?
김동우는 버스기사를 도와서 노인을 끌어내렸다.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인이 내리길 바라고 있었다.
버스문이 닫히고, 김동우는 창밖에 홀로 서있는 그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의 눈은 정말 이상해보였다. 뭔가에 홀려있나 싶을 정도로. 귀신이라도 홀린 걸까.
‘아오! 짜증나! 이런 썩어빠진 노인네 같으니라고.’
김동우는 모든 것이 후회됐다. 면접은 이미 늦었지만 가서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빌기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는 노인을 마주치지 않도록, 반드시 다른 길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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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참 안타까워서. 조금만 늦었어도.”
사고 현장을 지켜보던 경찰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조금만 늦게 왔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현장에는 이미 바리케이드가 쳐져있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김동우의 어머니는 바리케이드 밖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김동우가 탄 버스는 터널에 막 진입하던 참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때 터널이 무너졌다.
노인도 이 곳까지 걸어왔는지, 근처에 서서 사고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참 착했는데… 내가 보답을 못해서 미안해요. 좀 더 붙잡아둬야 했는데…”